고 한달선 선생님 이력 낭독
최용준(사회의학연구소장, 한림대 교수)
안녕하십니까, 한림대학교 사회의학연구소 최용준입니다.
바쁘신 중에도 왕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제1회 시상을 하게 된 사회의학 학술상은 작년 2월 타계하신 故 한달선 선생님을 기억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분 중에는 한 선생님과 인연이 없는 분도 있을 텐데 양해를 구합니다. 오늘 이 자리는 학술상 시상을 위한 것인 만큼 선생님의, 학자로서의 이력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한달선 선생님은 1939년,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태어났습니다. 1958년, 서울의대에 입학한 선생님이 보건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본과 2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예방의학을 가르쳤던 심상황 교수님의 강의와 교재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생물학적 접근이 아닌, 사회 제도적 접근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방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1964년, 의과대학 졸업과 함께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 입학하였습니다. 보건대학원 재학 중에 「공중보건연구회」라는 학생 조직을 만들고 연구회 학술지 「공중보건」을 창간하였는데 이것이 후에 서울대 보건대학원 학술지 「보건학논집」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2년 후 보건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보건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 논문 제목은 「일부 농촌 지역의 폐결핵에 관한 통계적 관찰」이었고 지도 교수는 권이혁 교수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보건대학원 시절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보건대학원은 2년 만에 정상적으로 졸업했으나 보건학에 대한 나의 지식은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건강 문제를 관리하는 데 대한 학문이라는 기초적 개념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게 된 정도에 불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졸업 후 선생님은 군 복무를 하였고 복무가 끝난 1970년, 보건대학원에 전임 강사로 부임하였습니다. 부임 직후, 같은 보건 행정학 전공인 허정 교수님의 가족계획 사업 연구를 돕고 의료 행정론을 강의하다가 1971년 8월, 미국 China Medical Board의 장학금을 받아 채플 힐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UNC) 보건대학원으로 연수를 떠났습니다. UNC에서는 보건 행정학 전공으로 1년 코스의 보건학 석사 과정에 입학하였습니다. 서울대의 MPH가 인정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박사 과정에 진학하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special student로 1년간 박사 과정 진학에 대비하여 여러 과목을 수강하면서 학점을 취득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이 시절에 보건의료를 사회 체계로 파악하기 위한 개념 틀과 이론적 접근에 대하여 이해하게 되었다고 회고합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시스템 접근이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에는 무척 새로운 것으로서 여러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 전략과 수단을 도출하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1973년, 선생님은 2년간의 연수를 마치고 보건대학원으로 복귀하였습니다. 귀국 후 보건대학원 박형종 교수님과 정경균 교수님의 가족계획 연구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미국에서 싹튼 조직 혁신에 대한 관심과 다변량 통계 분석 경험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1975년부터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처음 포함된 보건 부문 작업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러다 1978년 가을, 세계보건기구의 지원으로 채플 힐에서의 박사 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박사 과정 때 보건대학원에서 보건 행정학과 연구 방법론을, 사회학과와 경영대학원에서 조직 행동과 관리 분야를 공부하였습니다. 박사 학위 논문은 나중에 의료 조직 이론가로 유명해진 Arnold D. Kaluzny 교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학위 논문의 제목은 「Bed capacity change in community hospitals: a population ecological analysis of organizations」였습니다. 이 논문은 당시 새로운 조직 이론인 조직군 생태 이론의 시각에서 미국 병원의 설립 주체별 성장 과정을 계량적으로 분석한 결과였습니다. 선생님은 조직의 구조와 행동에 대한 이해가 보건의료 부문의 관리와 발전을 기하는 데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조직 이론에 대한 지식과 연구 경험을 활용한 심층 연구를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였습니다.
여기까지가 한달선 선생님이 직접 쓴 「보건의료 체계와 나」에서 밝힌 보건학자로서의 자신의 이력입니다. 그 후 선생님의 연구자로서의 이력은 저희가 앞으로 정리해야 할 숙제로 남기고자 합니다. 다만 비슷한 분야를 전공한 입장에서 학자로서의 한달선 선생님에 대하여 몇 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하나는, 당신이 직접 많은 연구를 하지는 못하였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개념이나 이론을 먼저 짚고 제안하였다는 점입니다. 보건의료 경제성 평가, 지역 보건의료 체계, 보건 정보 시스템, 의료 보험의 정책 수단적 가치, 사회의학의 개념과 가치 등이 그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중요한 연구와 학술 활동을 조직하거나 후원하였다는 점입니다. 강원도 화천군 지역 의료 체계 시범 사업, 보건소 정보 시스템 개발, 사회의학연구소 설치와 의료정책토론회 개최, 건강보장연구 발간 등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데에는 한 선생님과 같이하였던 고 김병익 선생님, 배상수 선생님 등 선배 학자의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학술 활동의 조직가이자 후원자로서의 선생님의 면모를 생각하면 아마도 오늘 이 자리를 기꺼워하였을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선생님은 당신이 다대한 연구 실적이 없다고 하였지만 제가 기억하는 선생님은 영락없는 학자였습니다. 정년 퇴임 후에도 저희에게 유익한 논문을 권하고 읽고 싶은 논문을 찾아 달라 부탁하며 같이 논문을 쓰자는 제안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2017년, 선생님과 배상수, 김동현 선생님, 그리고 저는 사회의학에 관한 논문을 써서 예방의학회지에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도 보직을 마치고 시간 여유가 생기면 주기적으로 선생님과 같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도 하며 논문도 더 쓰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선생님의 이력을 정리하다가 당신의 글에서 퍽 공감하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기여할 것이 없는 일이면 요청이 있더라도 미련없이 사양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마음가짐이다.” 제가 겪은 선생님은 그랬습니다. 뭐랄까요. 그 모습이 단정하고 정갈한 것이 영락없는 선비였습니다. 저는 가끔 한달선 선생님처럼 선비 같은 학자, 선비 같은 지식인도 조금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전부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말이죠.
긴 이야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