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소감
김진환(제1회 한달선 사회의학 학술상 수상자, 경희대 교수)
제1회 한달선 사회의학 학술상을 받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한달선 선생님께서는 1984년 한림대학교에 사회의학교실을 창설하시며 한국 사회의학의 제도적 토대를 놓으셨고, 평생 “공부하며 살고 싶다”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후회 남지 않게 살아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제가 한달선 선생님의 제자는 아니지만, 이 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된 것은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을 같이 지게 된 일이라고 느낍니다.
발표를 준비하며 이번 공모에서 제시된 사회의학 학술 연구의 정의를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건강과 질병의 사회적 원인과 분포, 의료의 조직과 제공, 그리고 건강 자원의 배분 문제를 사회·정치적 맥락 속에서 탐구하며, 지역사회를 중심에 두고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행동과 공공 정책의 중요성을 다루는 연구.
짧은 문장이지만, 저는 이 정의가 세 가지 요청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사회적 원인과 분포를 묻는 것입니다. 누가 아프고 누가 덜 아픈지를 기술하는 것을 넘어, 왜 그런 분포가 만들어지는지를 묻는 것. 측정에서 멈추지 않고 설명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사회의학 연구와 역학 연구를 가르는 중요한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의료의 조직과 제공, 그리고 건강 자원의 배분을 사회·정치적 맥락 속에서 보는 것입니다. 의료는 시장이기도 하고, 제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권력관계는 의료가 결부된 시장에, 제도에, 구조에 모두 작용합니다. 누가 어떤 의료를 어디서 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는 기술적 효율성의 문제이기 이전에 정치경제적 선택의 문제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지역 의료 격차, 필수의료 붕괴, 의료 자원 배분을 둘러싼 갈등은 이 맥락 없이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지역사회를 중심에 두고 정치적 행동과 공공정책의 중요성을 다루는 것입니다. 연구가 학술지 안에 머물지 않고 지역의 구체적인 삶과 이어져야 한다는 요청입니다. 그리고 그 연구가 정책으로, 나아가 정치적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요청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붙잡으려는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압니다. 사회적 원인을 묻는 연구는 방법론적으로 엄격하지 않다는 압력을 받고, 정치적 맥락을 분석하는 연구는 과학이 아니라는 의심을 받고, 지역과 정책에 밀착한 연구는 학술적으로 소박하다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추구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와 지적 체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사회이론에 대한 훈련입니다. 상을 받은 논문에 대한 반응을 보며 느낀 것이 있습니다. ‘국가’와 ‘정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구조적 진술을 행위자의 심리로 읽는 것, 경로 의존의 결과라는 해석이 변화의 가능성을 닫아버린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이런 오독들은 이론적 훈련의 부재에서 비롯됩니다. 사회이론은 연구 위에 얹는 장식이 아니라, 구조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렌즈 그 자체입니다.
사회의학 연구를 하고자 하는 연구자들께도 한 가지 당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구조를 묻는 연구는 심사에서 불편하게 받아들여지고, 정치적 맥락을 분석하는 연구는 중립적이지 않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그 질문을 놓지 말아 주십시오. 불편한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 그것이 사회의학 연구자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의학이 해야 하는 일은 시대마다 달라집니다. 피르호 시대에는 감염병과 빈곤의 연결을 가시화하는 것이 사회의학의 역할이었습니다. 20세기 중반에는 복지국가의 이론적 근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일까요? 저는 지금 사회의학이 맞서야 할 탈정치화의 새로운 형태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밀의학이 건강불평등의 원인을 개인의 생물학으로 환원할 때, AI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지 묻지 않을 때, 기후위기와 건강의 연결이 탄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없이 기술적 적응으로만 다루어질 때. 이것들이 지금 사회의학이 맞서야 할 탈정치화의 형태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구조를 묻는 것이 지금 사회의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우리 안을 돌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사회역학은 사회의학에서 자라났지만,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한 위험요인 역학이 되면서 점차 비판적 정향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불평등을 집요하게 측정하는 일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왜 그 불평등이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은 점점 중요한 질문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사회의학은 그 흐름에 저항하기 위해, 방법의 엄밀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구조를 묻는 질문을 놓지 않고, 그 질문을 뒷받침할 이론적 언어를 갖추는 자리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1회 수상자로서 한 가지 소망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상이 해마다 이어지면서, 한국 사회의학의 지형을 조금씩 바꾸어 가는 연구들을 발굴하고 격려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분포를 측정하면서 동시에 구조를 묻는 연구, 제도를 분석하면서 권력 관계를 놓치지 않는 연구, 학술적 엄밀성과 현장 밀착성을 함께 가져가는 연구들이 이 상을 통해 가시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상의 수상자 목록이 한국 사회의학의 지적 계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연구들이 축적될 때, 한국 사회의 건강이 관리해야 할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정치적 과제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달선 선생님께서 남기신 “후회 남지 않게 살아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이 상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한림대학교 사회의학교실의 여러 선생님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감사합니다.